에잇! 드럽고 치사해서 원.
아무한테도 알리지 않고, 조용히 저녁에 짐싸서 퇴사해야지.
희망퇴직 '제안'을 받은 이튿날. 이런 생각이 들었다.
첫날은 사실, 어벙벙 정신이 하나도 없었고, 약간 불안과 흥분의 마음으로 아내와 이야기를 나눴다.
아내는 담담히 들어주더니, '그렇게 힘들면 나오는게 맞지. 그동안 수고했어/' 라고 해 주었다.
그렇게 맞은 이틀차 아침. 출근해서 자리에 앉아 있는데 억하심정이 불현듯 올라온다.
아니, 내가 뭐 그렇게 부족해서?
흥! 나 없이도 잘 돌아가는지 보자. (뭐, 잘 돌아 가겠지)
내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보수다, 다른 사람들이 회사의 '진면목을 알게 해 주겠어'
아~~~~ 무 쓸데 없는 나만의 감정.
MBTI에서 감정형인 나는 사실 감정적이다.
감정형과 감정적은 다른 것이긴 한데, 내가 보기엔 감정형이 감정적일 가능성이 더 높다.
과거, 감정적으로 대응해서 실패하고 상처받았던 경험이 큰데 웃긴건 참, 여전히 감정적이라는거다.
그때는 그래야 내 '자존감'이 높아질것 같은데.
나중에 알고 보면 , 내 자존감이 낮기 때문에 자존심을 세우고 있다는걸 알았다.
근데, 알고 있다고 행하기는 쉽지 않은게 사람이다.
그리고 감정이 올라오면 그걸 컨트롤 하기도 쉽지 않다.
결국, 그 감정 또한 인정하고 느껴줘야 한다.
'아, 나는 지금 이런 감정이구나. 이런 감정을 느끼는 것도 어찌보면 당연하지 뭐'
나의 감정을 그냥 객관적으로 봐주는 것.
그것이 첫번째이지 않을까 싶다.
내가 나를 인정해 주면 감정적이 아닌 감정형 사람이 될 수 있다.
많은 지인들의 의견을 들어보다.
첫날, 그렇게 아내와 함께 이야기 한 후 퇴사를 결정했지만, 혹시라도 후회가 될까 싶어.
(그때는 분명히 후회를 할 것 같았다. )
참 많은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눴다.
그때는 뭐 자존심도 뭣도 필요 없었다. 소문이 다 나더라도, 그게 뭔 대수라고.
나에게는 중지(衆志)가 필요했다.
많은 사람들의 의견을 들었고, 아마 90%는 퇴사를 만류했다.
퇴사율이 KPI인 주관부서의 담당자와 그 팀의 팀장도 '너는 지금 나가지 말라'며 만류했다.
그 많은 사람 중 딱 두사람이 퇴사를 응원해 줬다.
첫번째는 아내가 "이번을 인생의 턴어라운드로 삼자"라며 응원했고
두번째 사람은 회사에서 나와 가장 같이 오래 일한 선배님이 "책임님은 회사에서는 빛이 안나는 사람이야. 하고 싶은것도 명확하니, 얼른 나서서 빛을 발했으면 좋겠다" 라며 응원해 주셨다.
그리고 하나더, 그 선배님께서
"선후배들이 현직에 있어, 끌어줄 수 있을때 나가는게 좋지 않을까?" 라고도 했다.
사실, 제일 마지막에는 이 말 '덕분에' 결정을 할 수 있었다.
생각이 바뀌니 행동이 바뀐다.
'선후배들이 나를 끌어줄 수 있도록 ' 해야 했다.
그러려면 내가 할 수 있는 걸 잘 알려야 했다.
처음 생각했던
'아주 조용히 , 아무도 모르게 퇴사'하려 했던 처음 마음과는 다르게,
나를 적극적으로 어필하기로 했다.
일반적으로 퇴사하기 하루전 혹은 당일에 메일 인사를 하는게 대부분인데.
나는 일주일 전에 메일을 썼다.
'다른 사람을 통해 건너 듣는것 보다 제가 직접 알려드리고 싶었다'는 핑계를 댔다. (사실이기도 했다)
최대한 내 말투를 살려서 보내본다.

커넷팅 닷.
메일을 보내고 나서 생각보다 반응이 나쁘지 않다.
(생각해보면 퇴사하는 사람에게 그 표현을 하는 사람이 있겠냐만)
"와, 언제부터 투자공부를 하셨어요? 몰랐네?"
"책을 벌써 몇권이나 쓰셨구나? 이미 준비다 했구만"
"뇌파와 MBTI , 그건 어떻게 하는 거에요? 나중에 할때 불러주세요"
이런 반응들이 생각보다 많다.
그리고 몇분들께서는 제안을 해 주신다.
"지금까지 준비를 꽤 오래 해 왔네요? 이 과정을 책으로 담아내 봐요, 저처럼 퇴직이 목전에 왔지만 준비가 하나도 안된 사람들을 위한 책을 써 보면 좋겠는데?"
"퇴직예정자 재테크 컨설팅 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어요. 얼른 책 쓰면 한국능률협회에 추천해 줄께요"
"우리 작년에 일했던 OO컨설팅 회사에 연락해 봐, 나도 이야기 해 놓을께~"
결국 이렇게 Connection dot이 된다.
감정적이 되지 말자.
희망퇴직 제안을 처음 들었을때, 나는 상당히 감정적이었다.
다행인 건, 감정적인 나를 알고 있었고, 그 감정적인 나를 인정해 주려고 노력했다.
나 혼자만의 감정/생각으로 판단하기 보다는 객관적인 시선이 필요했다.
그 과정에서 나의 자존심은 그리 필요치 않았다. 아니 지금 생각해 보면, 이렇게 '자신있게' 밝히는 과정에서
'준비됨'을 알리게 되어 자존감이 더 높아졌을지 모른다.
많은 사람들을 만난게 도움이 되었다.
여전히 부족하지만, 내가 어떤 준비를 해 온 사람인지를 말하니, 그분들이 같이 고민을 해 준다.
아. 그리고 그 과정에서 내가 살아온 삶의 궤적이 보인다.
아, 또하나, 내 주위의 진짜 내 편들이 보인다.
참 감사한 시간을 보내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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