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아버지 장례를 치르면서 자연스레 깨달은 '인생의 팁'이 있다.
어찌 보면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이랄까.
아버지의 부고 소식을 알린 후,
장례를 마치고 온 나를 대하는 동료와 지인들의 반응은 크게 두 가지였다.
첫 번째는 "아이고 어떡해"의 반응이다.
이미 그분들의 눈은 그렁그렁하고, 슬픈 표정을 짓는다.
어떤 분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말을 더듬기도 한다.
이럴 때는 먼저 웃어드린다. 나 괜찮다고, 잘 모시고 왔다고.
두 번째는 "애썼다"의 반응이다.
이분들은 대부분 나보다 인생 선배인 경우가 많다.
아버지나 어머니를 보낸 경험이 있는 분들.
인상을 쓰지 않고 차라리 엷게 미소를 띄워준다.
모든 분이 감사하다.
사실 나라면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나서지도 못했을 텐데,
한마디라도 건네주시는 분들이 고마웠다.
경험. 그 소중한 것에 대하여.
드라마 <술꾼도시여자들>에 장례 장면이 하나 나온다.
안소희(이선빈 분)의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그 연락을 받은 한지연(한선화)와 강지구(정은지)가 빈소에 먼저 도착한다.
강지구는 연락을 듣자마자 수백 킬로가 떨어진 친구의 부모님 집으로 택시를 탄다.
"빈차로 올라와야 하는데... 미터기로 갈까요?"라고 하는 택시기사의 말에
"기사님, 제 친한 친구 아버지가 돌아가셔서요"라고 말하니,
기사님이 뒤도 안 돌아보고 "벨트!"라고 외친다. 그러고 나서 기사님이 말한다.
"손님 같은 친구 하나만 있으면 든든하겠다."

그 장면을 보고 무지 뜨끔했다.
5년전 장인어른이 돌아가셨던 날,
아내가 나에게 물어왔다
"차를 못가져 갈것 같은데, 택시타고 가도 되나..?" 하고,
내가 먼저 회사고 뭐고 팽개치고 갔어야 마땅한 상황이었는데
솔직히, 아버님과 수년간 교류가 없었기에 장모님께서.. 천천히 오라고 하셨던 말을 믿었다.
아내는 장녀였기에 먼저 갔어야 했다.
동탄에서 인천까지, 퇴근시간이라 상당히 막힐것이 뻔했다.
그래서 그랬겠지. 아내가 나에게 물어온것이다.
물론 택시를 타고 갔고, 차가 너무 막혀서 결국에는 지하철로 옮겨 타고 갔다고 했다.
나중에 생각하니 미안하고 미안했다.
아버지 장례식에 가는 택시도 나에게 물어볼 만큼, 내가 스트레스를 줬다는 거니까.
강지구의 행동을 보면서 그 장면이 스쳤다.
한지연(한선화)는 먼저 와서 상주로서 해야 할 것들을 미리 다 챙긴다.
장례식장에서 가장 힘든 일 중 하나가 상주가 정해야 할 것들이 많다는 건데,
이미 경험이 있어 알고 있는 친구가 당장 급한 것들을 모두 정해놓고 중요한 것들을 알려준다.
그리고 무릎보호대까지.
"나는 한번 해 봤잖아"라는 말이 그렇게 슬프고 힘이 되는 말이었구나, 생각하게 된다.

나래도 그랬겠다. 그 어려운 공감에 대해.
공인 중 가장 공감을 잘한다는 유재석 씨.
가장 많이 하는 말 중 하나는 "나래도 그랬겠다"라고 한다.
이제는 그 말의 힘을 어느 정도 안다.
인생의 풍파를 몇 번 겪어 보니, 경험해 보니,
대부분의 사람들이, 아니 모든 사람이 그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걸 안다.
나와 이야기하면서 핏대를 올리며 어필하는 건,
내가 그만큼 그 일에 진심이고 잘하고 싶었다는 것.
거기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인생의 선배로서, 동료로서
"나는 이래", "이렇게 하면 좋겠다"가 아니라
"나래도 그랬겠다"는 인정과 공감인 것이다.
아, 진짜?
힘들었겠다.
아이고...
이런 단어들이 아무 의미도 없는 듯하지만,
세상에서 가장 유능한 컨설턴트의 말보다 큰 힘일 때가 있다.
언젠가 큰누님이 아이 문제로 상담을 해 왔을 때,
한 시간 동안 저 세 가지 말만 했던 적이 있다.
끝나고 나서 큰누님이 하는 말은
"야, 너 진짜 말 잘한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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