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즈넉한 일요일 아침
일요일 아침. 비가 뭔가 고즈넉하게 내린다.
도시에서 '고즈넉하다'는 느낌을 받기 쉽지 않은데, 왠지 오늘의 비는 그런 느낌이다.
빗소리만큼이나 마음이 차분해지고, 세상도 차분한 것 같다.
오늘은 버크만 워크샵을 하는 날.
열한 시가 되어서야 집을 나선다.
"숨겨진 나와 진짜 나 – 버크만으로 보는 관계의 비밀"에 대한 워크샵을 운영하는 날이다.
나서자마자 운동화 속으로 빗물이 들어온다.
고즈넉하고 차분했던 비가, 순식간에 불청객으로 바뀌는 순간이다.
"에잇. 안 되겠다."
생각하며 집에 들어와 크록스로 신발을 바꿔 신는다.
이 와중에 버크만 흥미 중 "예술" 점수가 생각난다.
나는 이 예술 점수가 10개 항목 중에 제일 낮다.
"강사인데 슬리퍼 신고 가도 되나..." 라는 생각을 할 겨를도 없이,
무엇보다 신발과 양말이 다 젖으면 강의 시간 내내 불편해서 툴툴거리고 있을 상황이 그려진다.
'보이는 게 뭐 대수라고...' 라는 생각을 하며
'수업을 제대로 하는 게 먼저지!' 하고 당당히 슬리퍼를 신고 나선다.
욕심이 부른 아쉬움
오늘 워크샵은 4시간 동안 3명의 강사가 진행하기로 했다.
하기 전에도 몇 번이나 회의를 하면서 이렇게 하자, 저렇게 하자 했고,
강의 경험이 있는 강사들이 꽤 있었기에 일단 "해보자!"는 생각이었다.
왠걸. 시간이 너무 부족하다.
아, 강의장이라도 좀 빨리 열어주면 세팅하고 바로 시작했을 텐데. 칼같이 그 시간에 딱 열린다.
생각해 보니, 오늘 처음 만나는 분들도 있다 보니 아이스브레이킹과 서로 소개도 해야 했는데,
그 시간에서 이미 20여 분이 쓰였다.
진단검사의 특성상 이야기도 많이 하고, 자신의 경험을 돌아보면서 해야 하는데,
시간이 호락호락하지 않다 보니 이야기하는 것도, 워크시트 작업하는 것도 모두 스킵됐다.
아... 아쉬워라.
"죄송합니다. 지금부터 랩을 좀 하겠습니다."
해야 할 건 많고 시간이 없으면 내 입에서 나도 모르게 흘러나오는 말이다.
다행히 딕션은 나쁘지 않은 편이라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 있긴 하지만, 이건 내 욕심이다.
이렇게 하는 건 차라리 하지 않는 게 낫다.
그래도 해보니까
워크샵이 끝나고 강사들끼리 잠깐 이야기를 나눴다.
다들 아쉬움 가득.
솔직히 말하면, 내 욕심이었다.
경험 있는 강사님이 욕심부리지 말고 Basic의 흥미로만 하든지, 아니면 관계 컴포넌트에 집중하자고 했는데,
시그니처 리포트에 흥미, 조직지향점, 관계 컴포넌트가 다 있다 보니 그걸 다 해주고 싶은 마음...
그리고 회사에서 한 걸 보니 세 시간 만에 그걸 다 하셨길래 (나중에 보니 자료가 숨기기 처리되어 있더라;;;)
욕심을 부렸던 게 패착이다.
"그래도 해보니까 알게 됐잖아요~" "다음에는 우리 잘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감사하게도 동료 강사님이 이렇게 말씀해 주신다. 맞다.
사실 이번 강의는 우리에게도 파일럿이었다.
버크만을 배우고 나서 처음 해보는. 그래서 우리도 성장하는 시간이었다.
다음에 할 때는 어떻게 해야 할지 감이 왔다. 일단 해보니, 알게 됐다.
해보면 하게 된다
인생을 살아오면서, 나의 생각과 행동의 정점은 최근 5년인데,
가장 큰 깨우침 하나가 "일단 해보면" 이다.
책으로 보면서 간접경험을 쌓는다? 다른 사람의 경험을 통해 알게 된다?
해보니 안 되더라.
간접경험은 간접일 뿐이다.
"아, 그럴 수 있겠구나"로 끝난다.
내 것이 되려면 "해봐야" 하더라.
그리고 내가 실행의지가 약하면, 같이 하면 된다.
누군가와 약속을 하면 된다.
독서모임 동료분들한테 "워크샵" 제안을 했다. 이게 첫 번째 멱살.
다행히 지난번 강점 워크샵의 기억이 있기에 다들 신청해 주셨고,
혼자 하는 게 아니고 동료 강사님들에게 하자고 했던 게 두 번째 멱살.
동료 강사님들도 흔쾌히 받아주셔서 결국 하게 됐다.
솔직히 준비를 하면서 "아, 괜히 하자고 했다. 힘들어" 라는 생각을 수없이 했다.
사실 9월에 할 게 많아서 더 그랬던 것 같다.
근데 맨날 그렇다.
뭔가를 계획해 놓고 나면 항상 "괜히 하자고 했다"라는 생각을 안 해본 적이 없다.
그건 푸념이다. 해놓고 나면 백 번 잘했다고 생각하니까.
결국 "해보면" 하게 된다.
일단 해보자. 해보면 알게 되고, 알게 되면 더 잘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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