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가 디카 (디지털 카메라)를 보다가 이런 말을 한다.
"젊을때의 당신이 여기 안에 있네?"
"아. 그래???ㅎㅎㅎ 마음 아파서 안볼래 ㅋㅋㅋ"
이사가 이제 10일밖에 남지 않았다.
요즘엔 집 여기저기에 있는 수납공간을 봐도, 이전보다 짐이 반정도는 줄었다.
아내에게 "혹시 OO물건 어딨어요?" 라고 하면
"그거 안쓰길래, 얼마전에 버렸어요~" 라거나, "어, 당근에 팔았어" 말이 돌아온다.
....
'나한테 좀 멀어봐 주지' 라는 생각을 했다가.
물건을 유난히도 버리지 못하는 호더 기질을 가지고 있어, 언젠가 아내에게
"나는 잘 못버리니까, 버릴거나 처분할거 있으면, 나 출근한 다음에 당신이 알아서 처리해 줘요" 했던 말이 기억났다.
뭐, 한두개를 빼놓고 나서는 그때 잠깐 불편했을뿐 다음에 다시 불편한건 별로 없었다.
어제는 미루고 미뤘던, 내 방 청소를 하기로 약속한 날.
요즘 집에만 오면 뭘 그리도 안하고 싶은지, 청소를 계속 미루고 있었다.
예전 일을 생각해 보면, 그래도 한두달에 한번씩은 모든걸 다 방바닥에 쏟아내고 한번씩 정리도 했었는데.
아내가 이미 눈치 챘는지, 아침에 아이와 체육센터 간다면서 물어본다
"여보, 오늘 어디 안나가지??"
"..... 응, 그려"
점심을 먹고 나서 방에서 노트북을 가지고 놀고 있는데,
아내가 와서 눈짓을 한다.
"같이 합시다"
".... 아.. 내가 알아서 할께. 꼭 오늘 해야해?"
"아니, 이번주말에 한다면서"
"알았어, 이사가기 전에 하면 되는거지?"
아내가 뾰루퉁해서 돌아간다.

'흐음.. 나 성격이 왜 이리 바꼈지??'라는 생각과 함께
'그래 어차피 할거 얼른 해버리자, 해 놓고 쉬는게 낫지' 하는 생각에 정리 안된 물건들을 방에 쏟아놓기 시작했다.
한시간이면 될 줄알았던 방 정리는.. 거의 세시간이 넘게 걸렸다.
그냥 정리하고, 나오는 쓰레기만 버리려 했는데, 왠만한 것들 - 올해 한번도 열어보지 않은 것들-을 대부분 버렸다
무슨 의미도 없는 상장과, 자격증, 임명증 등이 이렇게 많은지, 내용물만 빼고 상장케이스는 모두 버렸고
보험 약관과 증서, 부동산 문서 얘네들은 왜 이렇게 파일철에 고이고이 한장씩 모셔놨는지..
하나씩 다 빼서 버린다. 어차피 보험관련 문서는 PC로 보는게 편하고, 부동산들은 다 팔았으니 이제 의미가 없다.
내가 청소를 하니, 첫째 아들이 자기도 뭔가를 막 정리하고 찾더니
"엄마!!! 나 이거 찾았어!!" 라고 한다.
얼핏보니, 디지털 카메라다.
10여년전에 한참 똑딱이 카메라가 유행하던 시절 그리 비싸지 않게 샀던 물건인데.
얼마전에도 아들이 그거 어디갔냐고. 찾다가 못찾았던 기억이 있던 애다.

아이는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사진을 찍는다. 용케 고장이 안났구나.
사진을 찍다가 실증이 난 아들이 놓고간 사진기를 아내가 본다.
그렇지, 우리는 거기에 남아 있는 사진이 궁금하지.
아내가 연신 감탄사를 내뱉는다.
"와. 당신 예전에 이랬었지 참"
"꺄하하하, OO(친구). 사진이 여기 있네, 보내줘야겠다. "
옆에서 기분좋게 듣고 있다가, 문득 구글포토가 생각났다
"여보, 내 구글 포토에도 옛날 사진 많이 있어~" 라고 했는데
"아니야, 그거 말고 이게 재밌어" 란다.
아내가 휴대폰으로 사진기의 뷰파인더를 찍는다.
그리고 나선 친구에게 카톡으로 보내더니 한참 이야기를 하는 것 같다.
가끔은 정리를 해 보는 것도.
청소를 하며, 생각이 난다.
' 아 맞다. 예전에도 청소를 하면 몇시간씩 걸리고 하던이유가..
앨범이나, 잊고 있었던 뭔가를 찾아서였지'
정리를 하다보면 뭔가 많이 나온다.
어제는 '아, 나 이렇게 뭔가 상을 많이 받았었구나', '아, 예전에 참 이렇게 정리 해 뒀었지' 생각을 했더랬다.
그러면서, 다시 한번 의지를 다지게도 되고,
또 아내, 아이들과 함꼐 한번 더 웃을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기분이 우울할때, 정리를 한번 해 보자.
생각외로 기분좋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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