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임님. 너무 humble하지 않아도 되요.
10여년 전, 부서를 이동하게 되었을 때였다.
당시 마케팅/영업 컬리지를 맡았었는데, 연말 조직개편등으로 다른 본부로 이동하게 되면서
개편을 진행하고 있던 상황을 팀 내 공유하면서 인수인계를 했다.
영업/마케팅 컬리지의 특성상, 과정의 제목과 학습목표, 대략의 Agenda에
메인 강사만 정해지면 80% 정도의 일이 끝나기에 (개발 강사 정하기가 제일 어렵다),
자신있게 발표했다.
"음. 아직 개발 시작은 안했다는거네?"
새로온 팀장이 말한다
"네.. 뭐, 아직 가야 할 길은 좀 있습니다" 라고 대답하고, 그 자리를 마무리 했다.
오후에 같은 팀 선배님이 차한잔 하자고 하신다.
"책임님, 아까 왜 그렇게 조심스럽게 이야기 했어요? 그정도면 거의 다 된건데"
"아. 뭐 아시겠죠, 그리고 교안 개발도 안된건 사실인걸요 뭐"
"나야, 마케팅 컬리지를 해 봐서 알지만, 그분들은 잘 모르잖아.
책임님 나가고 난 후에 한분이 그러더라
' 뭐 다 된것처럼 이야기 하더니 하나도 안되어 있네요' 라고.
말 할까 말까 고민하다가, 그래도 이야기 해 주는게 맞겠다 싶어서.
너무 험블하게 이야기 하지 말았으면 해요."
충격이었다. 와. 그렇게 받아들일 수도 있구나.
사실 누가 그렇게 이야기 했는지도 감이 확 왔다. 이세상 살면서 이야기 끊은 딱 두사람이 있는데 그 중 한사람이다.
없는 틈을 타서, 날 그렇게 매장시키려 하다니.
어쨌든 선배님의 충고에 집중할 필요가 있었다.
너무 겸손하지 말아라, 표현할건 정확히 표현해라. 라는 이야기
그제, 담당 임원에게 심하게 챌린지를 당하고,
좀처럼 회복이 되지 않는다. 아니 별로 회복하고 싶지 않다.
나는 그런 의도가 있지 않았고, 나름 잘되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담당 임원은 어떤 포인트에서건 "일을 그따위로 해선 안된다"는 투로 이야기를 했다.
아마, 예전 같으면 '내가 왜 그랬지, 내가 뭘 잘못했지...' 라고 자책하고 있을 터.

내가 받아들여야 충고다.
그제와 어제 , 이 일에 대해 많이 생각해 봤다.
그리고, 사람들을 많이 만나서 이야기 해 봤고, 생각이 정리가 됐다.
'더 이상, 잘하지 못하는 걸 잘 하려고, 나를 갈아넣지 않으리라.
아직 남은 인생 4-50년, 내가 잘하는 걸로 승부를 보리라. '
난 사람들 앞에서 더이상 "괜찮은 척" 하지 않았고, 사람들은 이런 나를 이해해 주고 위로해 주었다.
그리고 진심으로 나에게 조언도 해 주는 선배도 몇명이나 있다.
항상 괜찮은 "척" 하지 말자.
세상을 살다 보면 "페르소나"를 끼고 살아야 하는 경우가 많다.
사회적, 가정적,관계적 페르소나가 다 있게 마련이다.
우리는 이 페르소나를 끼면서 평소와 다른 나를 "연기"하면서 살아가기도 한다.
나는 쿨 한 사람이었으면 좋겠고, 좋은 사람이고 싶고, 멘탈이 강한 사람이고 싶다.
그렇다는 건, 아직 내가 그렇지 못한 사람이라는 반증이기도 하다.
그래서, 누군가에게 이를 건드리는 피드백을 "심하게" 받으면, 가끔은 땅굴을 파고 들어가서
자책하게 되고, 자존감은 끝까지 무너져 내릴 수 있다.
나의 자존감까지 버리면서까지 그런 사람인 척 하지는 말았으면 한다.
나는 이미 잘 하는 것도 있고, 사람들은 나를 꽤 괜찮은 사람으로 인식하는 부분도 많다.
괜찮은 척 하지 말자.
아니,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항상 괜찮은 척은 하지 말자.
왠만한 것들은 이겨내는 강인한 모습, 강한 멘탈도 좋지만,
나의 자존감이 극하게 공격받고 힘들때, "난 그런 사람 아니야!!"라고도 이야기 해야 하고,
사람들의 도움이 필요할 때는 표현하고 받는 것도 중요하다.
무슨 말을 들을때나 "괜찮아" 라고 하는건 괜찮지 않다.
나의 상태에 대해 정확히 알고, 대응하고 지키는 것.
지금 이 사회에서, 나를 지키기 위해 꼭 필요한 "역량"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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