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를 바라보는 여행
아침에 메일을 하나 쓸 일이 있어 Gmail을 열었더니, 이런 메시지가 떴다.
'저장용량이 부족합니다'
얼마 전에 휴대폰을 바꾸고 그 안에 있던 사진을 백업하라고 했더니, 용량이 넘쳐버렸나 보다. 그렇다고 용량을 새로 구매할 용기는 나지 않아서(한 번 쓰면 계속 써야 하는 걸 안다) 기존의 사진이나 메일을 정리해 보기로 했다.
보다 보니, 두 장씩 저장된 것도 보이고, 아침 기상 인증, 스위치온 몸무게 인증을 한 것들도 보인다. 슥슥 지워나가지만 여전히 용량 경고는 켜져 있다.
어쩔 수 없이 예전 사진도 뒤진다. 사실, 예전에 한 번 정리한 터라 이젠 더 이상 지울 게 없기도 한데, 그래도 저 경고는 싫다.
항상 그렇지만 사진을 뒤지는 건 재미있다.
학생 시절, 중간고사 공부라도 할라치면 꼭 방 청소부터 시작했던 기억이 있는데, 앨범을 발견하곤 그 자리에 앉아서 두 시간 동안 앨범을 보던 기억도 난다.
언제 적이었을까. 아내와 아이들이 집에서 뒹굴던 사진도 보이고(첫째가 저리 날씬한 걸 보니, 최소 8년 전이다),
해남 부모님 집에 가서 집 앞에 만들어 줬던 수영장 사진도 나온다.
아들들이 그때는 저렇게만 해도 깔깔거렸는데...
사진을 보다가 "우리 가족이 여행을 언제 해 봤을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든다.
사실 작년에도 비행기 마일리지 소진 차 인천 하야트에 갔다 왔고, 그 전에 울진도 갔었던 기억이 난다. 내가 여행을 별로 좋아하지 않다 보니, 자꾸 안 가게 되는 것도 같다.
아참, 그러고 보니 최근엔 내가 출근하는 날, 아이들 방학 때 아내가 아들 둘 데리고 강원도로 여행 간 기억도 난다. 희한하게, 내가 따라가지 않는 여행이면 꼭 아들들이 다치는 사고가 났었지.
요즘 여행에서는 뭔가 저런 "웃음"을 지었던 기억이 별로 없다. 불현듯 2년 전 울진 여행에서는 3박 4일로 갔었는데, 다 채우지 못하고 그냥 왔던 기억도 난다. 아내가 "그냥 가자 집에, 힘들다"라고 했던 말도 생각이 난다.
아마... 내가 어디 나가기도 싫어하고 계속 방에만 있을라 해서 그랬던 것 같기도.
여행에서는 사실 뭔가 밖을 바라보는 것보다, 서로를 바라보는 시간이어야 한다.
그때의 나는 나만 바라봤던 것 같다. 요즘 현대의 가족들은 여행 가서도 휴대폰만 보는 것 같기도 하다. 사실 우리도 좀 그런 것 같기도...
나는 아직 여름휴가 전이다. 이번 주말부터 여름휴가를 가기로 했는데, 생각해 보니 매년 여름휴가 때는 항상 아내의 배려가 있었다. 어딜 여행 가는 것보다, 내 휴식을 하게 해 줬던 듯하다. 그래서 올해도 당연히 내 강의 준비하는 것과 공부하는 걸로 짜 놓았다.
올해 여름휴가에는 하루라도, 이틀이라도 여행을 가 봐야겠다. 아들들하고, 아내 데리고. 나 휴대폰만 안 써도, 충분히 재미있는 여행이 되지 않을까 생각을 해 본다.
서로를 바라보는 여행을 해 보자. 10년 후에 바라보고 웃음을 지을 수 있는 사진이 남겨지길 기대하면서 말이다.